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겨울 저녁이었다. 영하 20도 가까운 날씨가 사람들의 어깨를 잔뜩 움츠리게 한다. 부탁받은 일이 있어 사진기를 메고 Broadway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짧아져서 오후 5시가 넘자 이미 거리는 어둑해져가지만 이내 눈이 부시도록 불을 밝힌 네온싸인 덕으로 도시는 더욱 화려해졌다. 한참을 걸었더니 온몸에 한기가 온다. 손도 발도 얼굴도 꽁꽁 얼어버렸다. 근처 까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가지고 나와 몸을 녹이며 건널목 한켠에 서서 담배를 한대 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이곳에 서서 지나치는 각기 다른 삶의 이야기들을 차분히 들여다본다. 그때 건널목 신호대기에 서 있던 연인이 추운바람을 이겨내려는 듯 서로 꼬옥 포옹을 한다. 포옹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그 둘의 얼굴에 추위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마치 둘의 얼굴에 그려진 서로를 향한 사랑이 영하 20도의 날씨에 그대로 얼어버려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가 생각을 해본다.

사진을 한컷 찍어내고 남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깊숙히 들이켰다. 담배연기가 밤하늘에 그대로 얼어버리진 않을까 잠시 우스운 걱정을 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무심하게도 맨하탄의 밤하늘로 멀리 사라진다. 그렇게 우두커니 있다가 따뜻한 독일식 칠리소스가 담겨져 나오는 소세지와 맥주 생각이 나서 후배에게 전화를 넣고 맥주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온몸이 떨리도록 추웠지만 걸음이 걸음이 정겨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