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스페인 여행에서 머물던 숙소의 거실 창을 열면 건너편 옥상이 바로 시선에 닿았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가보면 그 옥상에는 매일 어김없이 빨래가 가지런히 널어져 있었고 오후가 되어 숙소에 돌아와 보면 빨래가 남김없이 걷혀 있었는데, 마치 친구들로 북적거리던 집에 친구들이 다 돌아가고 나면 그 북적함의 크기만큼 쓸쓸함이 가득 차 버리던, 어쩐지 그런 느낌까지 들게 했다. 게다가 건조기가 Must Have가 되어버린 미국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풍경이다 보니 우리들에게는 나름 정겨운 풍경이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숙소에 머물면서 건너편 옥상의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널어놓은 빨래들이 자주 시선에 들어오다 보니 문득 대학시절 자취를 하면서 수도 없이 손빨래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처럼 세탁기나 건조기가 빌트인이 되어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그나마 주인댁 아주머니께 이야기해서 짤순이 한번 사용할 수 있으면 횡재한 날이었다. 그렇게 게으름 덕에 밀리고 밀린 옷들을 한 번에 몰아 세탁을 하고는 물기를 잔뜩 먹어 철갑처럼 무거운 옷들을 스테인레스 세숫대야에 가득 담아 낑낑거리며 옥상에 가지고 올라가 빨랫줄에 한참을 널어 두고 나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버려서는 어느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20대 초반에 튼튼하게 타고난 체력이었음에도, 이 가사노동들이 좀처럼 쉬운 게 없었고,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사용하니 온몸이 쑤셔오고는 했다.

그래도 빨래를 한가득 널어놓고 나면 뿌듯했다. 그 뿌듯함에 빨랫감 그늘 아래 잠시 누워 있으면 흐르던 땀이 기분 좋게 식어내렸고 바람에 날리는 옷들 사이로 폴폴 퍼지던 향긋한 세제 냄새를 맡으며 잠시 그대로 잠에 들기도 했다.

기억과 함께 건너편 옥상에 가지런하게 놓인 빨래들이 그렇게 정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