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 A Moment, Beyond the Story

와인이 가져온 삶의 변화

아트만, Seoul, Korea 2025 / Leica M11 / Summilux 35mm f/1.4

서른 후반까지는 대부분의 한국 남성과 다름없이 늘 소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었다. 건배하고 잔을 비워내기 무섭게 잔을 다시 채우고, 웃고 떠들고 취하고, 다음 날이면 숙취에 괴로워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만 수만 번을 해왔던, 그런 보통 대한민국의 남성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지금도 간혹 즐거운 소주 자리에서 같은 상황을 여전히 반복하는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다.

미국으로 와서도 그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다. 술을 마시는 횟수야 한국에서 살 때와는 다르게 자연스레 줄어들기는 했지만, 타국살이를 하며 알게 된 한국인 지인들을 만나 종종 소주를 마시는 것이 외롭고 힘들었던 미국살이의 유일한 낙이기도 했으니 한 달에 두어 번은 한인타운에서 만나 삼겹살에 감자탕에 소주를 마시며 2차, 3차까지 흥건히 취해 집에 돌아오고는 했다.

그러다 2012년, 짝꿍과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 살기>를 했었는데, 당연히 소주가 없으니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내 인생에 불쑥, 예상치도 못하게, 와인에 대한 아주 확고한 이정표 같은 것이 뇌리 속 어딘가에 훅… 하고 꽂히게 된 거다.

“와인이 이렇게 맛있는 술이었나?”

예전 같으면 당연히 소주를 마셨겠지만, 바르셀로나에서 중간중간 한식당을 가서도 와인을 마셨다. 그때 와인이 한국 음식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와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편견이 아주 무참히, 깨끗하게 깨져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겐 반짝이고 길고 넓은 잔을 돌려 가며 향기를 맡고, 치즈나 햄 같은 것을 조금씩 먹으며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소위 재수 없는 부르조아나 허세 부리는 인간들의 이미지를 와인에 덮어씌운 채로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긴 여행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스페인 와인에 국한해 집중하며 마시기 시작했고, 각 와인들의 생산지와 포도 품종에 대해 함께 공부를 하며 <와인 마시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스페인 지역 와인만 5년 정도 집중하여 마셨고, 그 시간을 통해 각 생산자의 레시피, 그리고 생산지가 가지는 기후 토양 등의 외부적인 특성과 품종이 가져오는 차이가 주는 와인의 고유함을 어느 정도 느끼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집이 되었다.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내가 마시고 싶은, 또 밖에서는 비싸 마시기 어려운 와인들을 와인샵에서 구매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짝꿍과 집에서 와인을 마시는 시간이 가장 즐겁게 기다리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은 2주에 한 번 정도로 횟수가 줄었지만, 초반 6~7년은 매주 금요일에 #금요와인 이라는 애칭을 붙여 짝꿍과 빠짐없이 와인을 즐겼다.

그렇게 와인에 푹 빠져 지내다가, 2020년 한국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1년에 4~5개월을 한국에 지내게 되면서 와인을 편히 마실 수 있는 곳들을 알아보게 되었고, 그곳들을 통해 알지 못했던 와인들도 경험하고 그 장소를 통해 좋은 인연들도 만나게 되면서, 와인 덕에 생각지 못했던 즐겁고 유쾌발랄한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소주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다. 다만 소주가 마치 파도와 같은 활력과 몰아침이라면, 와인은 잔잔한 호수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느릿하게 각자의 속도에 맞춰 술을 음미하며 마시고, 즐겁고 유쾌한 대화를 길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소주와는 다른 와인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연말이라 모임이 많다. 물론 대부분 여전히 와인보다는 소주를 마시는 모임들이지만, 내 삶에서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부담스럽지 않게 소주만 즐기는 지인들을 와인으로 초대할 생각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들도 나처럼 훅~ 하고 어떤 이정표가 그들의 삶에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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